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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대입 검정고시 단번 합격과 컴퓨터라는 새로운 운명과의 만남

by 지에쓰 2026. 10. 9.

요즘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손안의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디지털 세상을 접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 집 아이들은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부터 각자의 방에 인터넷 허브로 연결된 데스크톱 PC를 하나씩 차지하고 끼고 살다시피 했다. 그 방면으로 대단한 두각을 나타내거나 뭔가를 크게 이뤄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일찍 맛본 디지털의 힘 덕분에 또래들 중에서는 사이버 세상을 앞서가는 축에 끼이게 되었다.

좀 더 과거로 돌이켜보면 나 역시 남들보다 조금 일찍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매료되었던 특별한 기억이 있다. 내가 컴퓨터를 처음 만난 것은 방위 복무 중이었던 1991년 가을이었다. 당시 20대 초반이라는 나이 자체가 시대적으로 특별히 빠르다기보다는, 컴퓨터라는 기계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직전의 일이었다. 고흥여자상업고등학교 여학생들이 타자기로 글을 치던 시대에서 막 컴퓨터 키보드로 넘어가던 그 무렵의 흥미진진했던 첫 만남을 풀어보고자 한다.

 

◎  2년 계획을 무색하게 만든 대입 검정고시 단번 합격

원래 대입(고졸학력) 검정고시는 1991년 8월과 1992년 4월, 2회에 걸쳐 응시해서 차근차근 나누어 준비할 계획이었다. 당시 제대로 공부를 하거나 시험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조차 충분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첫 시험이 다가왔고 그리하여 1991년 8월 시험은 그저 어떻게 문제가 나오는지 출제 경향이나 알아보고 맛만 보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험장에 들어섰다. 특별한 준비 없이 치른 시험이었기에 마음만큼은 편안했으나 시험을 치르는 동안 수학 과목은 조금 아슬아슬하게 느껴졌고, 계산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역시 이번 시험은 맛보기로 만족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합격자 발표 날 믿기 힘든 결과가 찾아왔다. 합격기준은 평균60점에 과락점수는 40점. 수학 점수가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45점으로 전과목합격 최저점수 40점을 넘어서꼬 평균이 73점이 넘어서  1991년 8월 첫 시험에서 덜컥 전과목 합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2년에 걸쳐 치르려던 검정고시가 단 한 번 만에 끝나버리면서 뜻밖의 기쁨과 함께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  검정고시 합격 이후 찾아낸 새로운 꺼리, 컴퓨터

검정고시라는 목표가 너무 일찍 마무리되다 보니 다음으로 빠져들 만한 새로운 꺼리나 목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바로 그 시점에 거짓말처럼 '컴퓨터'라는 신문물이 내 삶에 딱 얻어걸린 것이다. 어릴 적부터 글 쓰는 것을 참 좋아했다. 하지만 원고지 한 칸에 글자 한 자를 적고 띄어쓰기 칸을 비우며 쓰는 작업은 몇 글자 적지 않아도 200자 원고지 한 장이 금방 넘어갔고 뒷장을 쓰다 앞장을 들춰보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원고지 채우는 손맛도 있었지만, 나는 그저 탁 트인 백지에 편하게 써 내려가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러던 중 고흥여상에 다니던 친구 여동생의 타자기를 빌려 글을 써 보겠다고 타닥거리며 두드려보다가, 그 여동생에게서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검정고시 단번 합격으로 생긴 시간에 컴퓨터에 대한 급격한 호기심이 더해져, 그 길로 그 여동생을 따라 컴퓨터 학원으로 향했고 망설임 없이 학원에 등록하여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컴퓨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자판을 두드리던 그 순간의 설렘과 감촉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련한 잔향으로 남아있다. (그 때 마우스는 없었다.)

 

◎  MS-DOS 디스켓과 아래아한글이 선사한 신세계

당시 컴퓨터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까만 5.25인치 MS-DOS 플로피 디스켓이 필수적이었다. 드라이브 플랩을 열고 디스켓을 꽂은 뒤 까만 도스 화면을 마주하는 것부터가 신기했다. 도스 화면에 명령어를 입력하고 'hwp'를 치면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이 시원하게 열렸다. 모니터에 글자가 실시간으로 찍히는 모습은 신세계였다. 타자기는 오타가 나면 수정액(화이트)을 바르고 말린 뒤 다시 쳐야 했지만, 컴퓨터는 지움키(Backspace) 하나로 띡띡띡띡 깔끔하게 지워졌다. 작성한 글을 '저장하기' 하나로 플로피 디스켓에 담아두고 언제든 다시 열어볼 수 있다는 점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거기에 더해 작성한 글을 종이에 그대로 인쇄해 주는 '프린터'라는 장치까지 갖춘 컴퓨터 시스템은 당시 그 어떤 예쁜 여자애보다도 훨씬 더 매력적이고 멋져 보였다.

 

◎  검정고시 합격과 컴퓨터가 바꾸어 놓은 새로운 목표

검정고시의 단번 합격과 학원에서 맛본 컴퓨터의 재미는 삶의 목표마저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나면 매일같이 자율연습 시간이 주어졌는데 다른 수강생들이 단순 타이핑 연습을 할 때, 저는 아래아한글을 열어 저만의 글을 이어서 써 내려갔습니다. 학교 입학하기 전 아랫집 누나, 첫사랑의 기억부터 시작해 시골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광주에서 고등학교 시절 잠시까지 학창시절과 부산, 서울, 다시 부산과 광주로 이어졌던 사회생활 초년병으로서의 이야기들을 써나갔습니다. 지나온 삶 속에서 어설픈 풋사랑부터 나름 진한 썸도 있었고 가슴 아픈 짝사랑도 있었던, 제 인생에서 의미 깊었던 일곱 명의 인연을 추억으로 추려내어 그렇게 완성해 간 글에 '무지개를 사랑한 고래'라는 근사한 제목을 붙여주기도 했고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시시한 연애소설처럼 보일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지나온 청춘을 반추해보는 소중하고 달콤한 혼자만의 추억 여행이었습니다. 학원비도 내야했고 나만의 컴퓨터를 갖고 싶다는 열망에 주말마다 택시 알바를 하며 돈을 벌었고, 늦었지만 대학에 진학하여 컴퓨터 관련 전공을 해보고 싶다는 커다란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 결론 및 종합 의견

1991년 8월, 큰 기대 없이 맛보기로 치렀던 대입 검정고시의 단번 합격은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커다란 반전이었다. 그로 인해 얻은 여유 덕분에 '컴퓨터'라는 시대의 신문물이 운명처럼 얻어걸렸고, 이는 내 청춘에 뜨거운 열정과 새로운 꿈을 선물해 주었다. 1991년 가을, 방위 복무 시절 우연히 만났던 컴퓨터와 MS-DOS, 그리고 아래아한글은 저의 청춘에 새로운 열정과 꿈을 불어넣어 준 고마운 계기였습니다. 원고지와 타자기를 거쳐 모니터 화면 위에 글자를 새겨 넣던 그 시절의 순수한 감성과 열정은, 세월이 흘러 블로그에 글을 쓰고 일상을 기록하는 오늘날의 삶으로까지 예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 깊이 간직된 청춘의 첫 문물에 대한 추억은 언제 꺼내어 보아도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인생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원고지와 타자기를 지나 컴퓨터 키보드를 처음 두드리던 그 시절의 설렘은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PC 환경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오늘날 이렇게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는 커다란 자산이 되었다. 무심코 내딛은 가벼운 첫걸음이 인생의 가장 멋진 기회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가슴 깊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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