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폭삭 속았수다, 그리고 사투리에 얽힌 나의 청춘과 추억

by 지에쓰 2026. 10. 4.

'폭삭 속았수다'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아이유)와 '팔불출 부쇠' 관식이(박보검)의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저 번 주 추석 연휴 지나고 10월 첫 주에 또 개천절이 끼어있는 3일 연휴. 넷플릭스 시청하다가 전에 봤던 폭삭속았수다 돌려서 뒷 부분만 다시 보기를 했었답니다.

‘폭삭 속았수다’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는 ‘사기를 당해서 폭삭 망했다는 건가?’ 혹은 ‘폭삭 삭았다는 뜻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알고 보니 제주도 방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정겨운 인삿말이더군요. 경상도 표현으로 치면 “욕 마이 봤심더”, 전라도식으로는 “진짜로 욕봤소” 정도의 의미인 셈입니다. ‘폭삭’은 ‘매우, 몹시’라는 뜻이니, 전라도의 ‘겁나게’, ‘허벌나게’, ‘솔차니’ 같은 말처럼 어떤 말 앞에 ‘진짜로’를 붙여 강하게 마음을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속다’라는 제주 말이 어디서 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개인적인 짐작으로는 옛글의 ‘삭다’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생하고 수고를 거듭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폭삭 삭기 마련이니까요. 스스로 욕을 볼 만큼 고생했으니 ‘폭삭 삭을 정도로 수고했다’는 깊은 위로가 그 내면에 담겨 있는 듯합니다.

1980년 겨울, 거제도에서 만난 첫 타향 사투리

1980년 겨울 거제도에서 맞은 작은형 생일에 삼형제

사투리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1980년 12월,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의 일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전라도 고향 땅을 벗어나 처음으로 타향 사투리를 접했던 곳, 바로 경남 거제도였습니다.

당시 거제도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대우조선이 들어섰고, 두 살 터울의 큰형과 작은형이 나란히 입사하여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촌구석에서만 지내던 막내동생에게 넓은 세상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던 형들의 배려 덕분에, 완행버스와 직행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긴 여행 끝에 거제군 장승포읍에 도착했습니다.

거제도 자췻방 앞 공터 평상에는 늘 마을 아주머니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시곤 했습니다. 나름 시골에서 똘똘하고 눈치 빠르다는 소리를 듣던 저였지만,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경상도 사투리 앞에서는 그저 멍하니 서 있는 까막눈이 되고 말았습니다. 훗날 농가 온실에 배달 갔을 때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기들끼리 신나게 떠드는 모습을 볼 때 느꼈던 딱 그 기분이었습니다.

제2의 고향, 부산과 께노체의 추억

이후 열여덟 나이에 진출한 부산은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첫 사회생활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보았던 곳이자, 청춘의 한 자락을 보냈던 삼락동 하숙집의 추억이 서린 곳. 훗날 아내를 만나 살림방을 차리고 혼인신고를 하며 우리 가족의 첫 출발을 함께한 곳도 바로 부산이었습니다. (큰딸 아림이의 생물학적 고향도 부산인 셈이지요.)

처음 들었던 부산 사투리는 어른에게도 “밥뭇나?”, “뭐라노?”라고 하듯 반말처럼 들려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억양에 경상도 체가 조금씩 섞이면서, 훗날 윗쪽 지역으로 올라갔을 때는 전라도의 ‘~께라’와 경상도의 ‘~나/노’가 어정쩡하게 섞인 ‘께노체’를 구사하다가 어른들께 꾸지람을 듣기도 했습니다.

정겨운 사투리가 남기는 여운

세월이 흘러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한 지금, 가만히 지나온 날들을 돌아봅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사투리를 잘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가끔 이 지역 출신인 며느리가 “엔간찬하다”, “쎈찬하다”, “보로씨” 같은 정겨운 이쪽 사투리를 ㅇ주고받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옵니다.

삶의 고단함과 사람 냄새가 푹 익어 묻어나는 사투리. '폭삭 속았수다'라는 말처럼, 지난 세월 구비구비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네 모든 청춘과 삶에 따뜻한 위로 한 마디를 건네고 싶은 날입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버던산농원